정치적 허무주의

그라쿠스 형제는 결국 살해 당했다. 순수했던 조광조도 사약을 마셔야 했다. 광해가 축출되고, 소현은 독살되고, 정조는 암살 당했다. 현실 세계에선 늘 소시어패스 그룹이 승리했다. 그들은 살인, 권모술수를 마다하지 않았다. 이상주의자들은 그들의 이상주의적 가치 때문에 방법에 있어 스스로 제한할 수 밖에 없었다. 가장 폭력적이고 위력적인 무기를 제한 했다.

70년대 낭만주의 건달도 사시미 사용을 마다 않던 자들에 의해 끝나 버렸다. 주먹이 약한 것이 아니라 더 치사하지 못해서 더 야비하지 못해서 경쟁에서 밀린 것이다. 정치적 투쟁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더 악랄한 수법을 마다하지 않는 자들이 이긴다. 결국 무자비한 경쟁이 있는 곳은 늘 소시오패스의 놀이터가 된다. 

따라서 정쟁을 통해서 이상주의자들이 권력을 잡을 것이라 기대하는 것은 쉽지 않다. 정쟁의 장은 사이코패스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한 경기장이다. 

승리를 위해서는 경기장을 게임의 룰을 바꾸어야 한다.

거짓에 속한 이들이 아에 들어오지 못하게 혹 침투를 하더라고 그들의 게임을 시작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고도의 투명성이 요구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공동체가 그 사회이다.

반대로 현대 대도시와 정치권, 거대 기업, 각종 거대 기관, 그 중에서도 종교기관은 거짓의 사람들이 활개를 칠 수 있는 놀이터이다. 이 곳에서 가치에 헌신하는 진리의 사람들이 손발이 묶인채로 이기는 것은 기적적인 일이다. 즉, 승리는 매우 드물고 비 현실적인 일이 되어 버린다.

일상에서 늘 기적을 바랄 수는 없다.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악을 이기려 하면 결국 악한 방법에 중독될 수 밖에 없다. 악에 대항하기 위해 힘을 쓸수록 악해진다. 혹 그렇게 해서 악한 세력이 물러가도 세상은 바뀌는 것은 없다. 왜냐하면 세상은 여전히 악에 물들은 또 다른 세력이 세상을 지배하고 세상의 운영 원리는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치는 허무하다. 

악을 이기는 길은 단순히 악하게 살지 않는 것이다. 우리 만의 선한 길을 찾아야 한다. 경우에 따라서 악을 그들은 그렇게 살게 놔두는 것이 그들을 위해서 그리고 우리 모두를 위해서 좋을 수도 있다. 먼저 사랑을 실천하면서 사랑의 원리에 따른 공동체로 살면 된다. 그게 모두가 이기는 길이기도 하다. 

정치는 허무한 짓이다. 시시포스의 헛된 노력과 같다. 그러나 그럼에도 허무해 보이는 정치에 관심을 기울이고 필요한 만큼의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이유가 있다. 

정치에 너무 과도한 기대를 걸지 말아야 한다. 역사적으로 정치적 지도자에 대한 유토피아에 대한 비 현실적 정치적 약속과 민중의 비현실적이고 무책임한 기대는 재앙이었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환상적인 유토피아에 대한 약속의 명분으로 죽임을 당하거나, 유토피아를 건설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광기의 살인자가 되었다. 


유토피아를 약속한 거의 모든 정치적 엘리트의 약속과 민중의 허망한 기대는 결국 커다른 비극과 절망적인 폭정의 야기시켰다. 역사는 보여준다. 우리는 정치를 통해서 결코 유토피아를 건설하지 못했다. 정치 권력을 통해서 이룩하고자 하는 유토피아에 대한 비전이 거대할 수록, 이 약속에 대한 믿음이 강할 수록 과도한 정치권력 남용과 무자비하고 광범위한 폭력이 수반되었다. 정치는 허무하다. 


그러나, 풀뿌리 단계에서 이상 사회를 건설할 수 있는 사회적 환경을 지키기 위해서는 정치가 할 일이 있다. 곧 최악을 막는 것이다. 그게 정치가 할 일이고, 정치의 한계이다. 그래서 사회적 진보를 위해서는 반드시 민주주의가 필요하다. 민주주의가 가장 이상적이라서가 아니다. 민주주와 함께 사회적 부가 어느 정도 이상 되어야 이상 사회 건설을 위한 풀뿌리 운동의 전진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정치는 허무하다. 정치 권력을 통해서 세상을 바꾸려는 노력은 시시포스의 비극과 닮아 있다. 정치적 사상을 믿고, 정치적 엘리트에게 권력을 줌으로써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 

자기 책임을 거절하기 위한 방편으로 사용되는 메시아 콤플렉스를 벗어나야 한다. 스스로 일어나야 한다. 내 주변은 세상에 대한 책임은 내가 지는 것이다. 각자 자기 책임��� 받아 들여야 한다.  

우선 먼저 내가 바뀌어야 한다. 그렇기에 이는 자기 수련 및 자기 수양 운동이기도 하다.

동시에 스스로를 혁명한 이웃들 간의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관계가 바꿈으로 상식과 원칙이 지배하는 하나님 나라가 일상 속으로 풀뿌리 단계에서 먼저 다가온다.  

이는 정치적 상부 구조만 바꾸는 것이 아니다. 정치적 상부구조가 존재할 수 있게 하는 사회 기반체제의 변화를 야기하는 사회적이면서 동시에 개인적인 영적인 정치운동이다. 

사회 기반체제 변혁 풀뿌리 운동과 동시에 자기 책임을 받아 들이는 풀뿌리 운동이 가능하게 하는 정치 사회적 경제적 환경이 조성되어야 한다. 사회적 이상의 실현을 위해서는 풀뿌리 운동을 짓밟는 정치적 과잉을 야기하는 정치 만능주의와 함께 풀뿌리 운동을 위한 사회적 환경 조성을 좌절시키는 정치적 허무주의를 극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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